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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살아가는 법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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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들이 도시를 봉쇄하거나, 아니면 바이러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그 둘의 중간지점을 찾아냈다. 이 나라는 미래 판데믹 상황에 대비 인류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 지를 제시하고 있다.

박영준 씨는 한국이 자칫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무릎을 꿇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그는 질병관리청 역학조사팀장으로서 인구 250만명의 대구광역시에 파견됐다. 당시 대구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일촉즉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바이러스는 신천지라는 비밀스러운 종교 집단 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2월 17일 이들 집단에서 첫 번째 감염이 보고됐다.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31번째 감염 사례였다. 곧이어 일일 확진자수는 두 자리수, 세 자리수로 늘었다. 폭발적인 감염 확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다. “세 자리수로 확진자수가 늘어나던 날을 기억한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급증’이구나”라고 박 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감염 확산 초기 보건 공무원들은 각 확진 사례를 개별적인 사건처럼 취급했다. 개별 감염자에 대해서 최근 방문장소를 자세하게 추적했고,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대상으로 선별검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초기에 양성 판정을 받은 많은 수의 신자들과 그들 가족 사이에서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박 씨의 팀과 질병관리청의 레이더에서 벗어나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었다.

박 씨는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9층짜리 신천지 대구 성전을 방문한 모든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9,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강제 격리 대상이 됐다. 이들이 건물의 어떤 층을 방문했는지, 확진자를 접촉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든 양성 판정을 받게 되면 접촉자 추적 대상이 됐고, 접촉자들은 다시 선별 검사를 받았다. 더 이상 확진자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일련의 추적 과정이 반복됐다.

다소 공격적이고 비용이 많이 드는 접근법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감염 확산을 막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첫 번째 신천지 집단 감염이 발견된 지 나흘 안에 집단 격리 조치에 들어갔고, 3월 중순부터는 점점 확산세가 잡혀갔다. 이러한 대응 방식은 감염 확산 방지에 있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본이 되었다. 한국은 일일 확진자수를 수 백 건 또는 그 이하 사이에서 제어하고 있다. 분명 완벽하게 감염을 종식시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결코 보건 당국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도록 허용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방역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째는 공격적으로 검사를 시행함으로써 감염 확산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고, 둘째는 최신 기술을 접목한 접촉자 추적, 셋째는 의무적인 격리를 도입한 것이다. 여기에는 단 하루 동안의 봉쇄 조치도 포함되지 않았다. 문재인 행정부는 일찌감치 시민들의 일상 생활이나 사회 활동을 전면 금지시키는 봉쇄 조치를 거부했다. 경제적 타격이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OECD 추정 경제 성장률 하락폭이 가장 적은 나라이다. OECD 20개국에 대해서는 평균 4.1% 하락이 예상됐지만, 한국은 1%  정도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실업률은 약 4%로 바이러스 감염 이전 수준보다는 높지만,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판데믹 위기를 꽤 잘 헤쳐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은 사망률 및 장애율을 낮추는 데 있어 가장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인구는 5,200만명으로 영국의 ¾ 정도이고, 수도 서울은 런던보다 훨씬 크고 밀집된 도시다. 게다가 한국은 독재국가가 아니다.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고,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는 정치 지형을 갖고 있으며, 보건의료 수칙을 무시하는 다양한 종교 집단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이나 뉴질랜드와는 다르게, 바이러스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전략을 취하지 않았다. 지금은 종식 전략이 가장 비현실적인 목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한국의 대응방식이 완벽하지는 않다. 사망자수는 500명이 넘는데, 아시아 국가 기준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신규 확진자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위협이 되고 있다. 보건 당국은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는 감염 확산세와 맞서 싸우는 중이다. 2월 이후 가장 심각한 증가 추세다. 정상적인 일상 생활은 불가능하다. 다양한 강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모든 공공 장소에서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만 한다. 식당, 카페, 나이트클럽, 헬스클럽 등은 대체로 영업이 가능하지만, 일부 시설만 운영할 수 있다. 손님들은 점포를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정부의 접촉자 추적 시스템과 연결되는 QR 코드를 입력해야만 한다. 학교는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이로 인해 추가적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시민들이 도시 봉쇄와 바이러스 확산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 지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서구 국가들은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말해왔지만, 한국은 둘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한국은 대신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사회가 계속 돌아갈 수 있게 한다”는 단순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 노력은 잘 통했다.

이러한 경계 태세는 처음에는 다소 과도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박 팀장은 올해 대부분의 날들을 질병관리청 기숙사에서 지냈다. 그는 하루 16시간씩 일주일에 6일 동안 일했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판데믹 상황에서 한국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아마도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은 판데믹이 종식되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장기 억제 전략이라고 부른다.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면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살아가기’가 기본적인 컨셉”이라고 박 팀장은 설명한다.     

5년전 한국은 신종 바이러스 출현으로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2015년 5월, 68세의 온실 사업가가 바레인에서 출발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증상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증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의사는 폐렴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5일 후에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더 큰 상급병원으로 이송됐다. 곧 그는 한국의 첫 번째 MERS 감염 환자로 보고됐다.

첫 번째 환자가 최초 입원했던 병원에서 12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두 번째 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남자가 심하게 기침을 한 이후 82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바이러스는 병원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공중보건 측면에서는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검사가 늦어진 것도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데 일조했다. 정부 당국이 MERS 감염 환자가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대중의 분노를 유발했다. 결과적으로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보수당 박근혜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일련의 공중보건개혁을 추진했다. 질병관리본부가 다른 정부부처의 “컨트롤타워”역할을 하도록 지정하고, 신규 진단기기를 승인하는 응급 심사 절차를 도입해 1년이 걸리는 심사 절차를 1~2주 내 끝낼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한 주요 공중보건법을 개정, 접촉자 추적을 위해 “공중 보건 목적으로만 사용 후 상황 종료 시 폐기하는 조건으로” 방역 당국이 개인의 휴대폰 기지국, 신용카드, 공공 교통수단 이용 기록을 수집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판데믹 초기 새롭게 시행된 정책들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은 1월 20일 미국과 같은 날 최초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사례를 보고했다. 질병관리청은 설 연휴 동안 주요 헬스케어 회사들의 임원들을 서울로 소집했다. 질병관리청은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검사법을 공유하고, 진단기기 회사들이 같은 프로토콜을 토대로 진단키트를 생산하도록 촉구했다. 첫 번째 진단키트가 2월 4일 승인됐다.

2월 중순까지 한국의 확진자수는 10명 미만에 그쳤다. 기존 음압병상 만으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내 대구시를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지역사회로 급격히 퍼져 나갔다. 첫번째로 진단받은 신천지 신도는 61세 여성이었다. 그녀는 2월 7일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고, 곧이어 감기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보통 입원 환자는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그녀는 2월 9일과 16일 두 차례 병원을 나와 교회를 다녀왔다. 그 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신천지 신도들은 창립자 이만희 씨를 신격화하고, 몸이 아픈 상황에서도 예배에 참석하도록 독려한다. 두 시간에 걸쳐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1,000명이 넘는 신도들이 바닥에 서로 붙어 앉아 기도문을 외우거나 큰 소리로 “아멘”을 외친다. 이 정도면 바이러스가 전파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보건 공무원들에 따르면 신천지는 비밀스러운 포교 및 신앙 활동이 특징적이기 때문에 신도들은 자신의 가족에게 조차 자신의 종교를 밝히지 않는다. 잠재적인 감염자들이 전국적으로 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신천지 신도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방역 당국은 이만희 씨를 위협했고, 결국 20만명의 신도 명단을 얻어냈다.

대구에서 시작된 감염 확산은 전국 단위로 번졌다. 일일 확진자수는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에 500명 이상으로 치솟았다. 확진자수가 늘어날수록 대중은 패닉에 빠졌고, 마스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마스크는 인당 1주일에 2개까지만 구입할 수 있었고, 전세계 정부가 한국발 여행자들의 입국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정책 입안자들은 봉쇄 조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미 시행하고 있던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예방적 조치와 경제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지킨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원칙”이라며 “우리는 일찍부터 이러한 원칙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분명 봉쇄 조치는 적어도 단기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그뿐 아니라 “방역 정책을 실시하고 강화하는데 방해 요소가 된다”고 박 장관은 덧붙였다. 박 장관을 만난 것은 늦은 오후 시간이었다. 사무실 바깥 풍경은 판데믹 이전의 활기를 여전히 머금고 있었다. 지하철은 회사원들로 붐볐고, 도시의 고층빌딩 숲 사이에 술집이나 바비큐 회식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공무원들도 일시 멈춤 조치 없이 감염 확산을 막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박 장관은 “매우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선제 조건은 검사 수를 늘리는 것이었다. 신속하게 진단키트를 상용화한 덕분에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앞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선 의료진들의 피로 누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부산의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40세 마취과 의사 안여현씨는 선별 검사를 돕는 역할에 배정됐다. 검사에 대한 수요는 높았지만 안전하게 검사를 수행하기에는 “충분한 장비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보호용 헬멧은 동이 났고 의료진 감염에 대한 우려는 지속됐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나 남편, 다른 의료진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걱정이 됐다. 그녀는 집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베란다에서 혼자 식사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잘 알지 못했죠.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치료가 될 수 있을지 조차도요.” 그녀는 당시 “엄청 공포스러웠다”고 기억했다.

안 씨는 좀더 나은 방법으로 검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공중 전화 부스 같은 것을 설치해서 의료진이 안에 들어가고, 부스와 연결된 글러브를 이용해서 부스 바깥에 서 있는 환자의 검체를 채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의료진이 두껍고 무거운 전신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3월 그녀는 예산을 받아 부스 모델을 만들었고, 드라이브스루 형태의 검진소와 함께 수백 만개의 부스가 전국 전역에 설치됐다. 3월 중순까지 한국은 45만건 이상의 검사를 진행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검사 건수는 3만 5,000건에 불과했다. 한국의 일일 확진자수는 100명 이하로 떨어졌고, 수 개월 째 지속됐다.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전략 중 두 번째 핵심 요소는 철저한 접촉자 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공중 보건 중재법 중 하나로, 지난 100년 동안 광범위하게 활용되어 온 방식이다. 이 방법은 특히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감염성 병원에 효과적이다. 접촉자 추적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소규모 감염도 대규모 감염이 될 수 있고, 곧 봉쇄 조치를 필요로 하는 국가적 위기로 확대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역학 조사팀은 보통 시청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인천시 역학 조사팀을 찾았을 때 시청의 1층은 흡사 복합공간의 로비층을 연상케 했다. 시청 중앙홀에는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로비 한 켠에는 커피숍이 자리잡고 있다. 장한아람 씨의 사무실은 위층에 있었다. 군의관인 그는 올해 초부터 인천시 역학조사 업무에 파견됐다. 장 씨의 업무는 6명의 풀타임 역학 조사관을 이끌고 인천시 모든 확진 환자의 접촉자를 추적해내는 것이다.  같은 층의 낡은 냉장고 옆에는 간이 침대가 하나 있었다. 장 씨는 위기 상황이 발생한 첫 주 내내 사무실에서 먹고 잤다. “나 혼자 인천시 전체를 담당해야 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느꼈죠.” 그는 상위 의사결정권자들을 설득해 군의관을 더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역학 조사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이 “심각한 수준의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으며, 일부는 월 10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 씨의 팀은 누군가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게 되면 곧바로 투입된다. 보건 전문가들이 병원에서 환자를 만나 언제,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는 지를 확인한다. 이 정보는 장 씨의 팀에 전달돼  GPS나 거래 기록, 이동 기록, QR 코드 정보 등과 합쳐져 환자의 이동을 추적하고 확진 사례 간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데 사용된다.   

간이침대 반대쪽에 있는 두 개의 화이트보드에는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화살표선은 가능성이 높은 전파 경로를 표시하고 있고, 점선은 의심스러운 전파 경로를 나타낸다. 이렇게 표시하는 목적은 수 시간 내 또는 하루 동안 모든 접촉자들을 찾아냄으로써 이상적으로는 바이러스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기술이 동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거짓말은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24세 학원 강사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언제 어디에 있었는 지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몇 가지 세부사항들을 고의로 누락시켰다. 역학 조사관들은 그가 집에 있었다고 추정했지만, 사실은 그는 학생들을 만나고 있었다. 장 씨는 “한국 사람들은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워한다”며 “이 때문에 역학 조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학원 강사는 “역학 조사관이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내용만” 사실대로 말했다. 결국에는 위치 정보를 확인해 모든 접촉자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접촉자 파악이 늦어지는 동안 바이러스는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역학 조사관들은 법적, 문화적 테두리 내에서만 움직인다. 하지만 미국과 같은 서구권 국가에서는  정부 불신과 음모론적 시각 때문에 이런 방식의 접촉자 추적을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환자의 동선을 공공기관 웹사이트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기까지 한다. (환자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지만, 다른 공개 정보를 활용하면 환자를 식별해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예측하건대, 민간서비스업체들은 이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코로나맵’이라는 인기 웹사이트는 확진자가 다녀간 모든 상점과 레스토랑, 심지어 성형외과 정보까지도 공개하고 있다. 분명 상점 주인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 대비 이런 종류의 개인 정보 침해를 보다 잘 수용하는 편이라고 장 씨는 말한다. 그는 개인 정보 침해로 인해 얻는 공공의 이익을 강조한다. 한국인들 역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싶어하”지만 “프라이버시를 포기함으로써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접촉자 추적은 봉쇄 조치를 예방할 수 있다. 봉쇄 조치야 말로 접촉자 추적에 비하면 훨씬 높은 강도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접촉자 추적을 통해 한국인들은 계속해서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헬스클럽에 갈 수 있고, 많은 미국인들이 할 수 없는 일상을 누릴 수 있다.  

한국의 추적시스템은 판데믹과 함께 발전해가고 있다. 하지만 철저한 추적 방식에도 위기는 있었다. 신천지 드라마 이후 8월, 종교 집단과 보수당 지지자들은 모임 금지 규정을 어기고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후 전국으로 흩어졌고,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전국적인 감염 확산을 걱정했다. 이미 신천지 사건을 경험한 이후였지만, 정부의 대응은 인상적이거나 가혹하거나 그 둘 모두였다. 집회에 참가했거나 집회가 열린 지역 인근에 있었던 3만 5,000명의 GPS 정보가 수집됐다. 이들 모두에 대한 역학 조사가 실시됐고,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했다. 지방 정부들도 집회 참가 여부를 밝히지 않는 사람들을 추적해서 접촉자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종적으로 600명 이상의 양성 판정자를 찾아냈다.

정부는 승리했지만, 이 승리는 지난 3월만큼 압도적이지는 못했다. 일일 확진자수는 8월말 441명까지 올라갔다가 9월이 접어들면서 100명 가까이로 내려갔다.

오상헬스케어 본사는 서울 외곽의 수수한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방문자는 우선 입구에서 에어 샤워기를 통과해 오염 물질을 제거한 뒤, 머리 위에 설치된 온도 스캐너를 지나 체온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아야 한다. 로비의 경비원이 다시 한번 온도계를 들고 일일이 온도를 체크하면서, 접촉 추적 서류를 작성하도록 안내한다. 복잡한 절차는 손세정제를 짜서 문지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온도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는 무증상 감염을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지만, 이런 절차를 시행함으로써 한국의 기업과 시설 관리자들이 얼마나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상헬스케어는 1996년에 설립된 의료진단기기 제조업자다. 회사는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진단키트를 생산하는 주요 회사들 중 하나이다. 조립 공정은 사무실 위층에서 이루어진다. 제조 시설로 들어가려면 또다른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철제 공기 차단 시설에 들어가 고압의 제트 에어를 쐬는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푸른빛 점프 수트와 모자, 흰색 신발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신속항원 키트가 제조되는 과정을 면밀히 관찰한다. 신속항원 키트는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몇 분 안에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어서, 백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효과적인 감염 조절 방안으로 꼽힌다.

검사 키트의 제조 과정은 종이에서부터 시작된다. 픽업 트럭 길이 만한 기계가 거대한 종이롤을 내려서 검사 시약이 담긴 수조에 담근다. 수조에서 꺼내진 종이는 오븐에서 건조된 뒤 얇은 밴드 모양으로 잘려 나간다. 또다른 시약에 적셔진 종이와 이어진 다음 쇳소리를 내는 집합 트레이에 모여 개별 시험지 사이즈로 절단된다. 로봇 팔이 각 시험지를 플라스틱 포장에 담은 뒤 봉인하면 출고될 준비가 끝난다.   

이곳 제조시설은 주당 250만개의 신속항원 검사 키트를 만들어낼 수 있다. 키트는 개당 5달러에 팔리는데, 대부분은 수출용이다. 한국은 수요보다 훨씬 더 많은 진단기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상헬스케어의 이동현 회장은 검사 키트를 전세계에 수출함으로써 “사람들이 집에서, 또는 영화나 콘서트를 보러 가기 전, 심지어 공항 라운지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에 신속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허가 당국은 11월 첫번째 신속항원 키트를 승인했다. 봉쇄 조치와 잠재 감염 확산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국가 전략 무기를 하나 더 추가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위험 요소는 존재한다. 11월 중순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확진자수가 빠르게 늘어나 월간 신규 확진자수가 8,000명에 육박했다. 이는 10월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지난 3월 이후 가장 가파른 확산세를 보임에 따라 방역 당국은 과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한 기세가 역력하다.  

거의 1년간 수차례의 시행착오 덕분에, 한국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방역 전략을 자신하고 있다. 최근의 확산세로 당국은 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시험해보는 중이다. 단계가 높을수록 보다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된다. 11월 24일, 수도권은 1.5단계를 2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3단계가 되면 식당이나 체육관은 저녁 9시 이후 문을 닫아야 한다. 일반 사무실은 관계가 없지만, 나이트클럽은 문을 열 수 없다. 그로부터 2주후 다시2.5단계로 조정됐다. 2.5단계에서는 50명 이상의 모임이 금지된다. 이런 식의 단계 조정은 박 장관이 말한 “정교한 예방 대책”에 해당하는 것이다. 경제 전반을 전면 중단시키기 보다는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이나 행위에 방역 노력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외국인 입국 허용도 그 중 하나의 예이다. 한국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국경 통제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호주와는 다르게 한 번도 외국인 방문객을 전면 금지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외국인 방문자들은 14일동안 강제적인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하고, 방역당국의 주기적인 모니터링 대상이 된다.  긴급한 사업상의 이유가 있거나 사전에 승인된 여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 예외적인 이동을 승인해준다. 이 경우 방문자들은 입국 즉시 검사를 받아야 하고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방역 당국이 정하는 특별 격리 시설에 머물러야만 한다. 긴급 용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질병관리청이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전화를 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유사한 원칙이 박물관이나 영화관에도 적용된다. 대부분은 정상적으로 문을 열지만, 예외 없이 수용 인원 제한이나 마스크 착용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면서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자신감은 다른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새로운 백신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한국은 1년내내 평온을 유지한 채 관망해왔다. 11월 중순 박 장관은 국회에서 몇몇 제조업자와 협상 중이라면서도, 쫓기듯 계약을 체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러스 통제에 있어서 한국이 이뤄내는 성과는 아마도 독특한 문화적, 정치적 배경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전략을 다른 나라가 모방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일 미국이 1월 20일 이후 강력하고 효과적인 전략, 예를 들어 검사수를 늘리고 일관되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조치를 취했다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수는 지금과 달랐을 지도 모른다. 접촉자를 추적해내는 일은 디지털 감시까지 가지 않더라도 막대한 투자를 동반한다. 시간과 인력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집중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고,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대해 마지 않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앞당길 수 있다면, 투자는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11월 쌀쌀한 가을 밤, 수천 만명의 시민들이 방한복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낀 채 잠실운동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은 두산베어스와 LG트윈스의 플레이오프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것이다. 팬들은 클럽의 저지 셔츠를 입거나 깃발을 들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경기장 앞을 어슬렁거렸다. 얼핏 보기에는 작년과 다름없이 가을 이벤트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경기장 안 풍경은 사뭇 달랐다. 경기장 수용 인원은 절반으로 줄었고, 입구에는 QR 코드를 찍고 체온을 측정하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늘어섰다. 야구장 대표 음식인 프라이드 치킨이나 삼겹살, 만두와 같은 것들은 엄격히 금지된다. 야구장 전 지역에서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관중석 의자는 한 열 걸러 한 열 씩 푸른 색 테이프로 사람들이 앉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야구장 직원들은 세 가지 규칙 – 마스크 착용, 음식물 섭취 불가, 지정 좌석에 착석 – 이 적혀 있는 표지판을 들고 관중석을 돌아다닌다.

KBO리그의 류대환 사무총장은 야구장을 재개장한 뒤로 중대한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는 증거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들의 방역 조치들은 효과적이었다. 야구장을 바이러스로부터 지켜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역사회의 감염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조금만 야구 경기가 늦게 열렸더라도 서울에서 스포츠게임 관람은 전면 금지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잠실 야구장의 팬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팀을 응원했다. 판데믹 이후로는 관람객들이 큰 소리로 자신의 팀과 선수단을 연호할 수 없지만, 두산베어스의 호세 페르난데즈가 2점 홈런을 때려냈을 때 야구장은 잠깐 동안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팬들의 환호성으로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치어리더들도 마스크를 쓴 채 안무를 선보이는가 하면, 팀의 마스코트 인형조차 페이스 커버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22세의 야구팬 황세빈 씨는 베어스 저지와 패딩 점퍼를 입고 야구장을 찾았다. 올해 처음으로 야구장에 나온 것이다. 비록 바이러스 감염 상황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는 야구 관람을 주저하지 않았다.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전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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