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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모차르트의 음악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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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Mozart: The Reign of Love>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오르간을 본 순간부터 바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다. 6살 때, 이미 오르간 천재로, 오스트리아 교회에서 페달과 스톱들(같은 악기로 다른 음색을 얻기 위한 장치)을 처음 봤는데 보자마자 미라곡을 연주하며 자유자재로 즉흥연주를 시작했다. 이듬해인 1763년 하이델베르크의 한 관리는 그의 오르간 실력에 너무 놀란 나머지 소년 모차르트의 교회방문을 기념한 플레이트를 새겼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8살 무렵에 교황곡을 처음 작곡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 매일 모차르트를 통해 살아있는 기적을 행하신다”고 말할 정도였다.

어린 유망주들은 시간이 지나면 그 천재성이 약해지기도 하는데 모차르트는 달랐다. 유년시절에 보여준 그의 천재성은 후에 다가올 기적들을 암시했을 뿐이다. 모차르트는 클래식 음악을 가장 이상적으로 연주했을지도 모른다. 얀 스와포드는 그의 자서전에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곡 자체가 작곡한 것은 완벽함을 보여준다고 집필한다. 그는 빠르게 음악을 작곡하는데 수정이 필요없을 때도 있었다. 보수적인 음악을 보여준 바흐나 혁명가였던 베토벤보다는 모차르트는 콘서트나 오페라 무대를 위한 음악을 집에서 작곡했다.

안 스와포드는 모차르트는 불운했던 천재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타고난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의 대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만족스럽고 애정 어린 결혼을 즐겼고, 자신의 성공을 원망하면서 괴롭혀온 아버지를 멀리했다. 살자보스에서 비엔나로 거주를 옮기면서 그는 타락된 삶을 살았다. 스와포드는 “건반 위에서 즉흥으로 연주하는 것이 야옹거리는 고양이가 가구 위를 뛰어넘는 듯하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모습이었다.”라고 묘사한다.

그는 많은 자서전의 주제가 되었고 그 중 집필된지 100년이 지난 1600쪽에 달하는 하먼 알베르트의 자서전이 대표적이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작곡자 겸 프로그램 작가인 스와포드는 (모차르트의) 권위있는 삶을 보여주며 아름답게 묘사하지먼 작곡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평들을 적어놨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서곡은 눈이 부신 밝음과 지지지 않은 에너지로 차있고, 비플랫 메이저의 피아노 3중주에서 품위 있는 터치가 느껴진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는 맑은 결정체라 볼 수 있겠다.

모차르트가 바라본 선율과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은 오페라를 단순한 음악극에서 종합무대예술로 격상시키는데 기여하였다. 그의 재치, 인간에 대한 신랄한 관찰, 광적인 사랑에 대한 그의 집착이 완벽한 작곡가로 만들었다고 스와포드는 말한다. 그가 그려낸 장인물들이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휴먼 코미디에 빠지면서 모차르트는 그들에게 신성한 아리아를 안겨주었다.

그는 존경받아오지만 살아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전통적인 구조를 고수했으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모차르트는 가장 중요한 황제 요제프 2세는 모차르트의 연주를 돌려서 비평했다. “듣기에 쓸데없이 아름답구나, 모차르트, 음표가 너무 많은 것 같구나.” 모차르트는 아니꼬운 듯 건방진 태도로 대답했다. “폐하, 정확하게 필요한 음표만큼만 곡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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